![]() * 이것은 예술이다. 박물관이 아닌 극장에서 맛보는 예술혼의 짜릿함.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경의를. * 이런 영화는 시청 앞 광장, 모교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에서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상영해야 한다. 이왕이면 존 레논이 건의했던 것처럼 제단도 만들고 향도 피워놓으면 더 좋을 것 같음. * 전국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는 1년 내내 빡빡하게 잡혀있는 모의고사 늪에서 딱 하루만 양보하여 시험 대신 이 영화를 보러감이 어떨지. 등급은 15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신연령 21세 이상 관람가'라고 느꼈음. 그래도 좋은 영화는 안보는 것보단 보는 게 무조건 좋은 겁니다. 정신연령 15세인 저도 봤으니까요. 참 딱히 할 말이 안나오는 영화다. 심지어 오프닝 시퀀스부터 완벽했으니 내가 뭐라 평할 말이 있을까. 파란 불꽃과 함께 코믹북에서 가져온 몇 개의 컷들이 휙휙 '박쥐 날아다니듯' 검은 배경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조커 마스크를 손에 쥔 얼굴없는 남자가 스크린에 등장한다. 그리고 카메라의 포커스는 남자의 손에 들린 조커 마스크에 맞춰져 있다. 클로즈업. 그리고 사라지는 그 남자. 다섯 개의 똑같은 조커 마스크와 외따로 숨겨진 진짜 조커.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 감독은 초반부터 줄창 보는 사람의 심장을 쥐고 비틀며 우리가 갖고 있던 '순결하고 고귀한 개념들' - 이를테면 정의, 진실, 희생, 대의, 혹은 '절대악'이나 '절대선'으로 명명되었던 캐릭터화된 모든 상징들 - 을 10톤짜리 망치로 때려부수는 작업에 열중한다. 놀람과 충격의 연속이다.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너무 영화가 시원찮아서 보는 사람과 극중 이야기가 따로 겉도는 느낌이 든다거나, 혹은 그 반대로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는 새 극중 이야기에 빨려들어간단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둘 다 아니었다. 시종일관 얻어맞고 충격받고 전율하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를 즐긴게 아니라 - 여기에서 드라마틱한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조커와 배트맨, 그리고 배트맨과 하비의 역할이 [하나 더 보탠다면 레이첼과 하비의 운명까지도] 손바닥 뒤집듯 자연스레 뒤집어졌듯이 - 2시간 3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동안 영화가 나를 고문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품과 마주했을 때, 대상을 즐거이 보고 느끼고 관찰하기보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함부로 다가서지조차 못하는 것처럼. 검은색 코스튬, 우스꽝스런 화장, 야누스의 얼굴. 진실을 가리는 마스크, 혹은 양면성으로 압축되는 세 명의 캐릭터들. 그리고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한쪽 면이 타버린 동전. 누가 정의이고 누가 선인가. 누가 카오스고 누가 악인가. 혼란의 늪에서 그 경계가 모호함을 느낄 때 이미 영화는 '경계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다시금 내 머리를 망치로 두드린다. 조커가 말하듯 배트맨은 조커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존재이고, 거꾸로 조커는 배트맨을 완성시키는 단 하나의 존재이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어야 하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어야 하듯이. 악당이 있음으로 영웅이 생겨나고, 범죄가 있는 곳에야 정의가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며 심지어는 확률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기까지 하다. 앞뒤 모두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던 '정의의 동전'은 카오스를 만나 비로소 앞뒷면을 갖게 된다. 그렇게 앞과 뒤가 구분된 동전은 언제 앞이 나오고 언제 뒤가 나오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카오스적이지만, 분명 앞이나 뒤 둘 중 하나가 나온다는 점에서는 이상으로서의 정의만큼이나 절대적으로 공정하다. 영화는 다시금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정의, 카오스, 확률. 때문에 조커가 두 여객선에 던져놓은 시한폭탄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정의를 택하면 죽는다. 확률적으로 계산해도 죽는다. 왜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조커니까. 그에겐 논리와 이성과 이유와 목적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는 그냥 '미친 개'일 뿐이니까. 나는 조커를 조커 이상의 단어로 부르고 싶지가 않다. 조커라는 말 이외에 그를 더 잘 설명해줄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친 놈, 정신병자, 희대의 악당, 광기어린 살인마, 싸이코패스, 그 어떤 말도 조커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조커는 그냥 조커다. 그는 사회 어딘가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조금 더 범위를 좁히자면 (감독이 보였던 성선설의 마인드로 돌아가자면) '선한' 인간 내면에 반드시 존재하는 본질적인 악함과 추함이다. 태양은 반드시 그늘을 만든다. 빛이 있는 한 어둠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조커와 배트맨이 싸워 누구 한 쪽이 이긴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성립할래야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조커의 이해불가한 '카오스'적인 모든 행동 이면에는, 그 어떤 환경에도 결코 타락할 수 없는 역시나 이해불가한 배트맨의 무조건적인 정의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커의 말마따나 두 사람은 '평생 싸워야 할 운명'인 것이며, 결코 타락할 수 없는 배트맨과 결코 개선될 수 없는 조커의 싸움은 그저 싸우기만 할 뿐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시지푸스의 신화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만둘 수 없다. 배트맨은 조커이고, 조커는 배트맨이니까. 영화를 관통하는 메인 테마 - 죽어서 영웅이 되든지, 오래 살아 악당으로 남든지 - 는 그래서 더 간절하게 와닿는다.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 것인가. 마치 반으로 똑 나눠떨어지는 확률처럼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영웅이 되고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악당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의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정의인 것도 아니다. 때로 정의는 거짓이고, 거짓이 정의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정의를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참으로 놀랍고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타의 영화들이 했을 법할 관례를 - 남녀주인공을 짝지워주고 조커를 붙잡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든지 하는 - 이 영화는 단 하나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여자주인공을 죽이고, 하비 덴트를 악당으로 만들려다가 결국 만들지 못하고[나는 이 점이 정말로 놀라웠다], 배트맨을 자신의 여자친구 맘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으로 남겨두고, 그리고 그를 영웅이나 악당이 아닌 '구원자'의 의미로서 '다크 나이트'라 칭한 것. 더 이상 회생불능한 배트카에서 이대로 죽는가 싶더니만 한결 가벼워진 바이크를 타고 '부활'한 배트맨의 모습은 나에게 '정의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다'란 소박한 믿음을 주었고, 어쩌면 평생을 끼고 고민해봐도 알 수 없을 '정의'라는 것을 그럼에도 평생 고민해봐야 함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참으로 기뻤다. 어려운 문제를 껴안고 고민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편 반대의 누군가 역시 그러하구나. 그리고 그러한 정의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을 이처럼 멋진 영화를 통해 그런 쪽에 관심조차 없을 수많은 사람둘에게 달콤하게 속아넘겨 펼쳐보인 그 솜씨가 참으로 위대하게 느껴졌다. 조커의 말을 빌리자면 중요한 건 메세지니까. 돈이나 재미보다도 말이지.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캔맥주 한 캔을 샀다. 보글보글 거품이 이는 시원한 흑맥주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끈들을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나가는 일에 집중했다. 재미 같은 것을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벅차고 힘겨운 영화였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것을 남겨준 영화였다. 그런 영화가 있다. 볼 때는 재밌었는데 보고 나서 돌아서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것은 쓸모없는 영화다. 하지만 그런 영화도 있다. 재미를 느낄 틈도 없이 휘둘려서 보다가 보고 나서 돌아서면 모든 장면이 박히듯이 남는. 그런 것은 다시 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영화다. 보고 나면 끝이 아니라 보고 난 후가 진짜인 그런 영화다. 기억하고, 되새기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이미 배트맨 시리즈는 보고 즐기고 잊어버리는 수많은 오락용 블록버스터의 레벨을 가볍게 뛰어넘은지 오래다. 그리고 이번 편으로 영화는 예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위대한 예술품을 기꺼이 재관람할 준비가 되어 있다. 두 번이 될지 세 번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덧. 케이티 홈즈를 자른 것은 정말 이백번 잘한 일이었다. 히스 레저를 캐스팅한 것 다음으로 잘한 일인 듯. 덧2. 영화 어느 구석을 봐도 히스 레저는 없었다. 그저 조커만이 있었을 뿐. 덧3. 나는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당신의 말은 70%만 정의로워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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